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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회]19세기 말~20세기 초 해남 대둔사(大芚寺)의 중창과 재정 운영_김선기 연구자

2026-04-09
						

■연구명:19세기 말~20세기 초 해남 대둔사(大芚寺)의 중창과 재정 운영

■연구자명: 김선기  (국립순천대학교 남도문화연구소 학술연구교수) 

■ 학술지명: 한국문화113

■ 연구목적

 본 연구는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해남 대둔사의 중창 양상을 대둔사성조소일기를 바탕으로 분석하고 이를 통해 당시 사찰의 재정 운영과 사회적 관계를 고찰한 것이다. 1899년 10월 대둔사는 서상실에서 발생한 화재로 18개의 건물이 소실되는 대규모 피해가 발생하였다. 대둔사 승도의 공의로 화주가 된 법한은 복구 준비에 착수한 후 상경하여 궁중에 지원을 요청하였다. 그 결과 대둔사는 순비 엄씨와 영친왕의 원당으로 기능하게 되었고 이를 기반으로 내탕금과 권선문을 지원받아 중창 재원을 확보할 수 있었다. 이와 함께 관찰사와 군수는 중창 역사를 감독하는 역할로 참여하게 되었다. 대둔사의 중창은 1900년부터 1907년까지 이어졌다. 대둔사에서는 성조소를 설치하여 중창 재원의 출납 사항을 관리하였다. 그 기록인 ꡔ성조소일기ꡕ에는 1900년 10월부터 1901년 12월까지 의 내역이 수록되었다. 해당 기간 중창 수입의 총액은 49,314.54냥이었으며 그 재원은 결세, 읍봉, 권선, 기타의 유형으로 구분되었다. 유형별 비율은 결세 33.44%, 읍봉 8.72%, 권선 38.65%, 기타 19.19%였다. 결세와 권선의 비중이 총 수입의 약 72%를 차지한 것이었다. 이는 대둔사의 중창 재원이 국가적 지원을 토대로 확보되었음을 보여주었다. ꡔ성조소일기ꡕ의 결세 수입은 황


실의 지원이었으며 권선 또한 국가에서 지급한 권선문을 활용하여 그 권위를 매개로 거둔 수입이었기 때문이다. 같은 기간 대둔사 중창의 지출 총액은 49,762.97냥이었다. 지출 유형은 물품비, 인건비, 기타 로 각각의 비율은 물품비 30.24%, 인건비 49.01%, 기타 20.75%였다. 지출 비용에서 인건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높았다. 이러한 지출 내역은 대둔사의 중창이 행정 단위로부터 향촌 사 회 그리고 사찰 공동체까지 다양한 주체들의 참여가 중층적으로 결합된 결과물이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해당 내역을 살펴보면 조역군, 나무꾼, 목수, 장인의 역부로 참여한 인원이 최소 835명에 이르렀고 승인들은 화행을 통해 권선을 독려하였으며 군수는 역사를 감독하였고 수영 등의 행정 단위에서는 목재 수급을 지원하는 양상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둔사의 중창은사회적 조력 없이 이루어질 수 없는 결과물이었다.이처럼 대둔사의 중창은 사찰 내부의 공역을 넘어 국가·사회·승도가 중층적으로 결합되어 진행된 결과물이었다. 이는 사찰이 국가를 구성하는 하나의 공간이자 사회 속에서 함께 운영되는 공간이었다는 사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주제어: 사찰, 중창, 재정, 대한제국, 원당, 권선문, 사회적 참여